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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파엘아의 현실로그

간호사라는 직업, 생각보다 현실은 어땠을까?

by 사파엘아 2025. 4. 13.

간호사라는 직업, 생각보다 현실은 어땠을까?

사람을 살리는 멋진 직업이라고만 생각했는데, 현실은 피, 땀, 눈물 그 자체였죠. 간호사라는 이름 뒤엔 누구도 몰랐던 이야기들이 숨어 있어요.

 

안녕하세요. 올해로 12년 차가 된 간호사입니다.
첫 발령지는 중환자실이었고, 그곳에서 저는 처음으로 진짜 '의료 현장'에 발을 들이게 되었죠.
3년 차 무렵, 저는 이직을 결심했고, 다시 CICU(심장중환자실)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로테이션을 통해 병동 근무 중이에요.

사실, 간호사가 되기로 마음먹은 것도, 이 일을 이렇게 오래 하게 될 줄도 몰랐어요. 고등학교 때는 관심조차 없었으니까요.
‘그냥 졸업만 하자’는 마음으로 다녔던 간호대 시절, 실습을 하면서도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았어요. 두렵지도, 특별히 재미있지도 않았고, 그저 ‘이 일은 나랑 안 맞는다’는 생각뿐이었죠.

처음 인공호흡기 환자를 마주했을 때도, 낯선 기계음과 무표정한 환자 앞에서 한참 동안 말을 잃었던 기억이 나요.
간호라는 일이 이렇게 무겁고, 또 조용하게 누군가의 삶에 닿는 일이라는 걸 그땐 잘 몰랐어요.

그렇게 별다른 감흥 없이 시작된 저의 간호 인생엔, 예상하지 못했던 현실들이 참 많았습니다.
간호는 제가 기대했던 ‘안정된 전문직’이 아니라, 매 순간 감정과 체력, 정신력을 모두 쏟아야 하는 일이었어요.
때론 무력했고, 때론 뿌듯했고, 자주 지치기도 했지만… 그 안에서 저는 저만의 방식으로 간호를 배우고, 견디고, 조금씩 성장해 왔습니다.

오늘은 그 ‘진짜 이야기’를, 조금 나눠보려 해요.

수많은 손; 업무에 쫒기는 간호사

간호사가 될 생각 없던 내가 중환자실에 간 이유

고등학교 3학년, 간호사는 내 진로 목록 어디에도 없던 단어였어요. 대학교 진학조차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던 제게 담임 선생님은 “전문직 하나 가져야 하지 않겠냐”며 간호학과를 추천하셨고, 저는 그냥 ‘일단 졸업만 하자’는 생각으로 학교에 들어갔어요. 하지만 기대 없이 시작한 그 길은, 뜻밖에도 제 인생을 통째로 바꿔놓더라고요.

실습을 돌면서 다양한 부서를 경험했는데, 정말 운 좋게도 응급실(ER), 응급중환자실(ERICU), 신생아중환자실(NICU) 같은 특수부서를 연달아 배정받았어요. 그때 느꼈어요. 병동보다는 특수부서가 제 성향과 확실히 잘 맞는다는 걸요. 특히 중환자실에서 ‘내 환자는 내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일대일 구조가 인상 깊었어요. 책임감도 크지만, 오히려 그게 더 편했고 집중도 잘 됐거든요. 환자, 보호자와의 복잡한 소통보단, 빠르게 돌아가는 의료현장 속에서 직관적으로 움직이는 게 저에겐 더 맞았던 거죠.

그래서 자연스럽게 ‘나는 특수부서에 가야겠다’는 확신이 생겼고, 졸업 후 첫 부서로 중환자실을 자원하게 됐어요. 물론 막상 배치됐을 땐 겁도 나고 긴장도 됐지만, 내가 선택한 길이라는 자부심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죠. 그리고 그 선택은 지금까지 12년째 이 일을 계속하게 해 준 가장 중요한 결정이었어요.

중환자실의 하루: 드라마와는 다른 세계

드라마 속 간호사 모습과 실제는 정말 달라요. 중환자실 근무는 마치 전투 같았어요. 알람 소리, 코드 블루 호출, 긴장된 분위기. 특히 초반엔 인공호흡기 환자 옆에서 주사 하나 놓는 것도 손이 덜덜 떨렸죠. 근무 중엔 밥도 제때 못 먹고, 화장실 가는 시간도 사치였어요. 그래도 죽어가던 환자가 회복해 퇴원하는 걸 볼 때마다 묘한 희열을 느꼈어요. 그게 이 일을 버티게 하는 유일한 힘이었달까요.

드라마 속 간호사 현실 속 간호사
깔끔한 유니폼에 여유 있는 대화 땀범벅 유니폼에 헐레벌떡 뛰어다니기
차분하고 포근한 이미지 긴박하고 빠른 판단력 요구

간호사의 일상

버텨야만 했던 순간들, 그리고 번아웃

솔직히 그만두고 싶었던 순간 많았어요. 특히 첫 사망 환자를 겪었을 땐 멘붕이었죠. 울지도 못하고 그냥 멍하게 있었어요. 이직도 했고, 두 번째 병원에서는 심장중환자실(CICU)에 배치됐는데 거긴 또 다른 차원의 고됨이 있더라고요. 계속되는 나이트 근무, 반복되는 사망-입원-응급상황 루틴에 내 정신은 점점 탈진되어 갔어요. 그래서였는지 어느 순간은 그냥 '기계처럼' 일하고 있는 제 자신을 보며 놀랐죠.

  • 아무 감정 없이 출근만 반복할 때
  • 주말엔 잠만 자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
  • 퇴근 후에도 알람 소리에 깜짝 놀랄 때

병동 근무, 또 다른 전쟁터

중환자실에서 병동으로 로테이션되었을 땐, 솔직히 좀 ‘덜 바쁘겠지’라는 기대도 있었어요. 근데 그건 착각이었죠. 지금 근무하는 병동은 호흡기내과, 갑상선외과, 산부인과, 성형외과, 치과 등 다양한 과가 섞여 있는 혼합 병동이에요. 그 중에서도 가장 고난이도였던 건, 호흡기 준중환자실을 병동 내에 신설했을 때였죠. high flow, home ventilation, feeding, suction 등 까지… 일반병동 간호사들이 하기엔 부담이 컸지만, 모두가 발 벗고 나서서 결국엔 해냈어요.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그 덕에 지금은 일반병동에서도 꽤 숙련된 간호사로 인식받고 있어요.

병동 일과 중환자실과의 차이
병실 이동, 회진, 수술 전후 관리 * 환자 turnover가 더 빠르고 다양함
보호자와의 직접 응대, 설명 업무 심리적 소진도가 높음

*환자 turnover란?

입원 → 치료 → 퇴원 → 다음 환자 입원 이렇게 환자가 바뀌는 과정을 말해요.
즉, 병상에 머무는 환자가 바뀌는 속도예요.

12년차 간호사가 말하는 성장과 감정

12년을 이 일을 하며, 분명히 성장했어요. 처음엔 인공호흡기나 EKG 해석도 막막했지만, 지금은 후배들에게 설명까지 할 수 있죠. 어려운 의학 용어도 환자에게 쉽게 풀어 전달하는 게 자연스러워졌고요. 그리고 감정적으로도… 강해졌어요. 울 일도, 화날 일도 많았지만,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조절’이 가능해졌더라고요. 나를 지키는 기술을 배운 거죠.

앞으로 간호사가 될 당신에게

처음 간호대에 입학했을 땐 이 길이 맞는지 확신이 없었어요. 지금도 완벽하진 않아요. 다만 확실한 건, 이 직업은 사람을 살리는 일이자 나 자신도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직업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아직도 간호사로 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힘들지만, 정말 멋진 일이니까요.

  • 힘들 때는 반드시 ‘내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기
  • 완벽하려 하지 말고, 성실하려고만 하자
  • “왜 이 일을 시작했는지” 가끔은 떠올리기

 

미래 간호사가 원격 모니터링 기술을 활용하는 장면

 

Q 간호사를 시작할 때 가장 두려웠던 건 뭐였나요?

환자를 직접 다룬다는 책임감, 생명을 다룬다는 중압감이 가장 컸어요. 내가 실수하면 어쩌지 하는 공포가 늘 있었죠.

Q 중환자실과 병동, 어디가 더 힘든가요?

힘듦의 종류가 달라요. 중환자실은 긴장감, 병동은 체력과 감정 소진이 커요. 개인 성향에 따라 다를 수 있죠.

Q 혼합병동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파트별 특성이 너무 달라서 모든 영역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알아야 해요. 매일이 공부의 연속이죠.

Q 간호사로 오래 일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요?

생명을 살리는 보람, 전문 지식에 대한 흥미, 그리고 좋은 동료들 덕분이에요. 혼자였으면 벌써 그만뒀을지도 몰라요.

Q 신규 간호사에게 해주고 싶은 팁이 있다면?

질문을 두려워하지 말고, 기록은 꼼꼼히, 그리고 자기 몸과 마음 챙기는 연습 꼭 하세요. ‘내 편 만들기’도 중요해요.

Q 간호사로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생명이 위독했던 환자가 회복돼 퇴원하면서 “당신 덕분이에요”라고 말했을 때요. 아직도 그 말이 귀에 맴돌아요.

 

12년이라는 시간 동안 수많은 환자와 동료를 만났고, 수없이 많은 감정을 오갔어요. 간호사는 단순히 ‘환자 돌보는 사람’이 아니에요. 때로는 생명의 수호자이기도 하고, 때로는 내 감정을 숨겨야 하는 배우이기도 하죠. 이 글을 읽는 당신이 간호사가 되기로 결심했다면, 그리고 지금 그 길을 걷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충분히 멋진 사람입니다. 힘든 날도 많겠지만, 그 안에 당신만의 성장과 자부심이 깃들길 바래요. 우리 함께 버텨요, 같이 나아가요.